《기계적 윤회》, 인간성과 기계의 간극에서 태어나는 예술적 초월 — 왕지원의 움직이는 붓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부터가 기계일까. 이 질문은 단지 과학기술 시대의 이슈를 넘어, 예술의 본질과 감각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왕지원 작가의 전시 《Mechanical Samsara》"는 그러한 근본의식에서 출발한다. ‘윤회’라는 불교적 세계관에 기계장치를 결합한 이번 전시는 기술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욕망, 그리고 그 경계 위에 선 존재로서의 인간을 조형적으로 탐색한다.
움직이는 붓다 — 모터 위의 초월성. 왕지원 작가는 2009년부터 선보여 온 ‘Buddha’ 시리즈에서 기계와 불교의 조우를 실현했다. 사고로 인한 신체적 고통, 그리고 기계가 되었으면 하는 상상. 그의 조형언어는 인간의 고통을 기계로 정화시키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특히 이번 금산갤러리 전시에선 모빌 형식으로 제작된 인체 기계, 복잡하게 설계된 움직임을 지닌 신작 등 총 16점의 작품이 선보였다. 이들은 물리적 장치의 반복 운동 속에, 해탈에 가까운 평정과 절제의 미학을 담아낸다. 몸은 불완전하지만, 기계화된 움직임은 오히려 완전한 반복과 규칙을 따른다. 이 아이러니가 바로 ‘기계적 윤회’가 지닌 핵심이다. 불교, 과학, 그리고 예술 사이의 삼중주 왕지원은 인터뷰에서 말한다. “기계로 해탈할 수 있다면, 그것도 또 하나의 초월 아닐까.”
그의 붓다는 교리적 종교성이 아니라, 기술을 통한 자기 초월, 존재론적 해석으로 재탄생한다. 불교의 엄숙한 이미지 대신, 작가는 관람객과의 직관적 소통을 선택했다. 그의 붓다 앞에서 누군가 절을 올렸던 장면에서 출발한 이 여정은 이제 더는 종교적 경외를 강요하지 않는다. 기계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냉정하면서도 뜨거운 불교적 조형체로 우리 앞에 서 있을 뿐이다.
인간이라는 불완전성의 존엄. 왕지원 작가의 기계는 완벽을 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 신체가 만들어내는 무게감과 불균형, 그리고 그것이 다시 자아가 복원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균형을 잃고 다시 되찾는, 그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삶의 궤적을 본다. 움직임이야말로 존재의 증거이며, 불안정함 속에 진정한 완전함이 깃든다. 기계는 감정이 없지만, 왕지원의 기계는 감정을 상기시킨다. 기계는 종교적이지 않지만, 그의 기계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왕지원 작가의 예술은, 기계에 인간의 상처와 초월의 욕망을 투사한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 불상임을.
예술은 경계를 넘는다.《기계적 윤회》는 불교, 기술, 조각, 미디어아트라는 경계를 넘어선다. 왕지원 작가가 보여준 움직이는 붓다의 형상은 단지 시각적 자극이 아니라, 기계로 형상화된 영혼의 자화상이며, 지금 이 시대, 예술의 초점이 물성과 기술을 넘어 인간성 그 자체로 향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지금 이 움직임의 끝에서, 우리는 되묻는다. 기계는 감정이 없지만, 그 움직임은 왜 우리를 울컥하게 만드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