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 – 무라카미 다카시, Superflat Wonderland》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을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건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서부터 비즈니스일까?’라는 질문이었다. 서울 태평로의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린 《Superflat Wonderland》는 일본 현대미술계의 이단아이자 아시아 미술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어버린 작가의 기념비적인 ‘미니 회고전’이었다. 그는 미술가이면서 경영자이고, 장인이자 기획자이며, 무대 뒤에서 디렉터로 작동하는 복합적인 존재다.
이번 전시는 ‘Mr.DOB’ 시리즈, ‘Kaikai Kiki’ IP, ‘탄탄보’ 같은 대지진 이후의 작품까지 망라하며, 그가 구축해온 ‘슈퍼플랫’ 세계의 완성된 단면을 보여줬다. 슈퍼플랫은 단순히 그림의 평면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하위문화와 고급문화를 평면적으로 섞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철학이다. 말하자면 무라카미 다카시는 서구미술계에 ‘오타쿠 정신’을 번역해 수출한 전략가다. 그것은 그저 일본스러운 것을 뽐내는 수준이 아니라, 세계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간파하고, 그것을 일본의 전통적 시각에서 재가공한 결과다.
그의 대표 캐릭터 ‘Mr.DOB’는 “왜? 왜?”를 뜻하는 ‘도보지떼?’(Dobojite?)와 음담패설성 개그 ‘오샤만베’(Oshamanbe)에서 따온 말장난으로 만들어졌다. 이 캐릭터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호성을 상징하며, 동시에 현대미술의 개념주의를 비꼬는 전략적 아이콘이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 한 캐릭터로 수많은 평면작업과 입체 조형, 브랜드 컬래버레이션까지 아우르며 ‘슈퍼플랫 유니버스’라는 완결된 브랜드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는 작가가 아니라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자’다.
흥미로운 건 전시장에서 그가 했던 발언이었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라 사람들과 말도 잘 못 한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스스로를 결핍으로 이끌고 가며, 그 안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재구성한다. 그는 말한다. “성공한 예술가는 완전한 존재로 보이지만, 나는 모자란 사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예술은 부족함에서 출발한다.” 예술은 늘 구조적 모순과 부재로부터 새로운 감각을 끌어내야 한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런 점에서 장인정신을 예술적 메커니즘으로 확장한 존재다.
그가 가장 영향을 받은 인물은 천재 애니메이터 카나다 요시노리다. 풀프레임이 아닌 1초 3~8장의 컷으로 승부해야 하는 저예산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그는 ‘한 장면’으로 로봇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카나다의 스타일은 선과 색, 잔상과 빛의 효과를 극한으로 끌어내는 움직임이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이로부터 ‘광학적인 시각 구조’를 자신의 작품 안에 반영했고, 그것은 결국 ‘슈퍼플랫’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되었다.
그는 단순한 아티스트가 아니다. 카이카이 키키(Kaikai Kiki)라는 회사를 통해 100명 넘는 직원들과 함께 작업을 한다. 이번 전시에만도 120명의 스태프와 함께 방한했다고 밝혔다. 그에게 ‘작업’은 홀로 몰입하는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협업적 경험이다. 그는 “우리 회사는 정상적인 회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우리가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 이 회사는 반드시 잘 돌아가야 한다”고 단언한다.
카이카이 키키는 아트 브랜드이자, 제작사이자, 멀티미디어 창작소다. 그 안에서 그림은 상품이 되고, 전시는 브랜드가 된다. 그러나 그 속에 진정성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는 “회사가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내 작업이 팔리지 않으면 해체하겠다”고 말한다. 냉정하면서도 철학적인 경영자다.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브랜드’가 사회적으로 어떤 위상을 가지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작품이자 ‘상징조작’이다.
그의 예술적 정체성은 아이러니하다. 애니메이션, 만화, 하위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도, 글로벌 아트페어에서 가장 비싼 작품을 낳은 작가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중 ‘My Lonesome Cowboy’는 무려 15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으면서도, 한편에선 ‘상업성의 화신’, ‘오타쿠를 이용한 비즈니스 사기꾼’이라는 냉소를 받는다. 하지만 예술의 가치란 무엇인가? 위대한 작품은 태생부터 기획되고 연출된 의도를 가질 수 없다. 오히려 그렇게 기획된 작품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될 때, 그것은 ‘예술의 승리’가 아닐까.
‘Superflat Wonderland’는 단순히 평면적인 회화 스타일이 아니라, 현대인의 감각, 디지털 시대의 시각 구조, 하위문화와 고급문화의 평면적 병치를 반영한 ‘우리 시대의 거울’이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말한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했고, 사람들이 좋아해주었다.” 그렇다. 그는 오타쿠로부터 출발했지만, 이제는 오타쿠를 전시하는 큐레이터이자 예술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위대하거나, 사기꾼이거나. 이것이 바로 무라카미 다카시가 구축한 ‘예술의 아이덴티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