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속에 숨어 있는 내면의 우주, 쿠사마 야요이의 점과 환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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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만 같지 않다: 쿠사마 야요이, 점의 우주와 독백의 시간》‘같지만 같지 않다.’ 그녀의 작업 앞에 서면 반복과 집요함 속에 숨어 있는 다름을 체감하게 된다. 같은 점(도트), 같은 패턴, 같은 반복 속에 완전히 다른 감정과 기억이 얹힌다. 이번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쿠사마 야요이 개인전은, 단순히 하나의 거장을 만나는 시간을 넘어 우리가 어떻게 상처와 결핍을 예술로 되살리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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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점, 또 점. 쿠사마 야요이는 여전히 캔버스 앞에서 점을 찍는다. 휠체어에 앉아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강박과 환각, 환영 속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점들. 도쿄 정신병원과 작업실을 오가며 이어지는 그녀의 루틴은 이미 하나의 퍼포먼스다. 땡땡이 작가, 혹은 ‘도트의 여왕’이라 불리지만, 그녀에게 도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과 몸, 세계에 대한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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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는 섹스의 화신” 1970년대, 뉴욕에서 누드 퍼포먼스를 벌이던 쿠사마 야요이를 향해 일본 언론은 자극적인 수식어로 몰아붙였다. ‘누드의 여신’, ‘섹스의 화신’. 그녀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은 그녀를 부끄러워했고, 신문과 잡지를 사들여 불태웠다. 그러나 그녀는 그 불길 속에서 오히려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생을 ‘성(性)’과 ‘몸’, 그리고 ‘정신’에 대해 싸우고, 이야기하고, 반복하며 예술로 발화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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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작고, 끝없이 큰 세계. 110여 점이 넘는 작품, 영상과 설치, 신작 페인팅까지.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는 양적으로도 압도적이지만, 무엇보다 내용적으로 지금까지의 쿠사마 야요이와 다가올 쿠사마 야요이를 동시에 목격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였다. 특히 점이 아닌 눈과 사람의 옆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최신작은 마치 원시의 본능, 무의식의 단면을 꺼내 보이듯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반복된 형태 속에 서린 인간 존재의 흔적은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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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뷔통을 입은 쿠사마 야요이. 2012년, 루이뷔통과의 협업으로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인지도를 얻게 된 쿠사마 야요이. 예술과 패션의 경계는 허물어졌고, 그 허물어진 경계 위로 점들이 퍼졌다. 명품이 된 도트, 그러나 그녀의 도트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흔들린다. 화려하고 예쁜 점이 아니라, 숨이 막히는 생존의 점, 반복의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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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남성을 그리지 않는가. 그녀는 남성 혐오증을 앓았다. 어린 시절 바람둥이였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가 그녀에게 아버지의 불륜을 감시하게 한 기억. 트라우마는 단순히 정신적 상처가 아니라 예술의 가장 강력한 촉매가 된다. 그녀는 독신으로 평생을 살았고, 그녀의 작품 속 ‘성’은 쾌락이 아닌 두려움과 고통의 메타포로 존재한다. 그녀는 섹스의 상징이 아니라, 그것을 직시하고 분해하는 이단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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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베니스, 그리고 대구. 그녀의 작업은 뉴욕 MoMA, 베니스 비엔날레를 거쳐 이제 대구로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남미, 중국, 대만, 인도를 잇는 순회전의 첫 출발점이자, 유럽에서 열렸던 전시의 연장선이다. 특히 이번에 소개된 신작 30여 점은 뉴욕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개인전에 앞서 처음으로 공개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자체로 아시아 현대미술의 결정적 장면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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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신문, 타오르는 예술. 누가 그녀를 사기꾼이라 욕했는가. 그녀는 지금도 점을 찍는다. 과거에 불태워졌던 신문과 잡지는 이제 미술관의 아카이브가 되었고, ‘기괴하다’는 시선은 ‘천재적이다’는 찬사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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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 말한다. 찬사도 상처도 무겁게 떠안고서, 매일매일 작업하는 쿠사마 야요이. 그녀에게 예술은 증명이나 화려한 명예가 아니라 살아있음을 증거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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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좋아요. 대신 봐주세요.” 작업실에서 점을 찍고, 환각 속에서 살아가는 이 노인의 작품이 왜 이렇게 강렬하게 다가오는가.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가 모두 조금씩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 아닐까. 쿠사마 야요이는 말한다.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봐주세요.” 우리는 그 부탁 앞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예술이고, 존재이고, 반복의 숭고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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