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에 새긴 철학, 책을 사랑한 장인 슈타이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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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심장을 찍는 사람 –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 展에서, 책. 두께와 종이, 표지와 제본, 활자와 이미지. 누군가는 그것을 '물건'이라 부르고, 또 누군가는 '기록'이라 말한다. 하지만 대림미술관에서 만난 독일의 출판 장인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은 그 어떤 정의보다 깊은 감정을 건넨다. 그는 책을 만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사랑하는 방법을 스스로의 손끝으로 매일 재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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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들, 장인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다. “디지털은 빠르지만, 종이는 오래 남는다.” 그의 말은 단순한 기술의 비교가 아니다. 슈타이들에게 책은 한 권의 예술이다. 문학, 사진, 패션, 철학, 공예, 모든 것이 ‘종이’ 위에서 조화를 이루는 총체예술로서, 그는 인쇄의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 심지어 종이 두께를 손끝으로 재며, 인쇄기의 색 농도에 따라 인쇄물을 다시 뽑는다. 그의 출판사는 공장이 아니다. ‘Steidl Ville’라 불리는 독립 왕국이며, 책의 영혼을 찍는 공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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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미술관 전시장 한 켠에는 그런 ‘스튜디오의 일상’이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코토 볼로포(Koto Bolofo)의 렌즈에 담긴 인쇄공정, 재단, 바인딩, 교정지 위를 걷는 고양이의 발자국마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슈타이들의 하루는 종이 위에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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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북이라는 예술의 실천. 이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사진 전시나 문헌 기록이 아닌 ‘책이 만들어지는 찰나’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칼 라거펠트의 컬렉션을 정리한《The Little Black Jacket》, 짐 다인의 손에서 나온 원화 판화를 책으로 옮긴 과정, 귄터 그라스의 문학 텍스트가 활자로 정제되어 나오는 과정까지, 모든 것이 마치 조각처럼 배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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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가의 메시지를 왜곡하지 않기 위해 인쇄 방식과 제본 구조를 직접 결정한다. 그러므로 슈타이들의 책은 ‘작가의 연장선’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아트북은 단지 멋을 위한 형식이 아니라, 예술을 완성하는 하나의 장치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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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든다’는 고요하고도 위대한 일. 전시장을 거닐다 보면, 이 전시의 제목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이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철학임을 느끼게 된다. 슈타이들의 손길은 하나하나가 시간을 거스른다. 무심한 듯 묵묵하게, 그러나 결코 대충이 아닌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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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마지막 공간에 놓인 대형 활판 기계 옆에서 아트보이는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디지털 환경에 잠식된 시대에, 이 기계는 한 시대를 버티고 있는 구식 배처럼 보였다. 하지만 슈타이들의 철학은 가장 오래된 기술에서 가장 새로운 아름다움을 길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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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한, 그것이 무슨 일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에겐 고되고 반복적인 노동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매 순간이 고결한 창작이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일은 그만큼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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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트보이는 다시 책을 펼친다. 전시를 보고 돌아온 그날, 아트보이는 무심코 책장을 펼쳤다. 책등에 숨은 자국들, 페이지마다 스며 있는 종이의 결, 색의 번짐까지, 그 모든 것에 누군가의 진심이 깃들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슈타이들의 전시는 책을 다시 사랑하게 만든다. 아니, 잊고 있던 애정을 되살리는 것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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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생각했다. ‘책’이 아니라, ‘어떻게 책을 만드는가’가 중요하다고. 책이 곧 사람이고, 슈타이들의 삶은 바로 그 종이 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