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세계를 움직인 전설, 이소룡 40주기 전시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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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짧았으나 강렬했던 삶 – 이소룡 40주기 특별전. 서울 도심의 한 전시장에서, 아트보이는 오래전 잊힌 ‘몸의 기억’과 마주했다. 붉은 포스터, 황색 배경 위 검은 한 줄기의 눈빛. 고요한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 그 이미지엔 ‘용’의 정기가 살아 있었다. 전설적인 액션스타 이소룡(李小龍), 그의 서거 40주기를 기념한 특별전은 단순한 추억의 재현이 아닌, 동양 신체의 철학이 세계로 뻗어나간 한 시대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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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 육체라는 예술. 이소룡은 몸으로 세계와 싸운 예술가였다. 194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란 그는 동서양을 넘나든 인물이었다. 1960~70년대, 인종차별과 문화 충돌의 경계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언어 삼아 싸웠다. 전시 공간에는 그가 아역으로 출연했던 흑백영화 스틸컷과 청년 시절 미국에서 출연한 TV시리즈 《그린 호넷》의 이미지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마치 인생의 서사를 따라가는 필름처럼 그의 청춘이 벽 위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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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연기자이자 철학가였고, 무엇보다 무술인이었다. 영화 속 절도 있는 액션 장면은 단순한 격투가 아니라 일종의 철학적 동작이었다. “형태는 없다. 물처럼 되어라(Be water, my friend).” 그의 유명한 말처럼, 절권도는 유연하고 경계가 없었다. 무기 없는 동작, 공기를 가르는 손짓 하나에 이소룡의 무술은 예술로 승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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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와 피규어, 상업과 숭배 사이. 이번 특별전은 단순히 이소룡의 과거를 복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여전히 상징이다. 전시장 안쪽에는 그를 기념하는 전세계 영화 포스터와 희귀 피규어가 진열되어 있었다. 일부는 1973년 그가 사망한 직후 배포된 홍콩 현지 포스터였고, 일부는 국내 팬들이 자체 제작해 수집한 독립 출판물과 굿즈들이었다. 상업과 숭배의 경계를 오가는 그의 형상은 여전히 활자화되고 입체화되며 반복 소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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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죽어서도 팔리는 브랜드이자 살아서도 투쟁하던 아시아인이었다. 전시 중 흑백신문에 실렸던 이소룡 광고를 보며 아트보이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당시에는 그것이 단순한 영화 홍보였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것이 저항의 문장이자 정체성의 언어로 보인다. 그의 유산은 단지 무술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증명하는 몸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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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의 헌정, 기억의 재건축. 이소룡 40주기 특별전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그가 ‘우리 곁’에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전시는 상업적 주체가 아니라, 국내 팬들과 수집가들이 협력하여 만들어낸 전시였다. 특히, 수십 년간 수집한 포스터와 사진, 팬진(fanzine) 형태의 책자, 영상자료, 팬 아트까지. 그것은 그를 단순히 스타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의 집단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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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유한하지만, 기록은 재생된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아카이브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인간의 생은 죽음으로 닫히지만, 그의 철학은 영원히 반복된다. 팬들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이소룡의 흔적들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문화적 심벌로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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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면 약해지고, 참으면 강해진다” 전시 마지막 공간에 적혀 있던 한 문장은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때리면 때릴수록 약해지고, 사람은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진다. 사람은 분노하면 분노할수록 약해지고, 참으면 참은 만큼 강해진다.” 이 문장을 음미하며 아트보이는 이소룡이라는 존재가 단순히 ‘세다’는 이미지가 아니었음을 느낀다. 그에게 있어 강함은 인내였고, 싸움은 품격이었다. 그것이 그를 영웅이 아닌 철학자로 만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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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은 짧은 생을 살았다. 그러나 33년간 그가 세계에 던진 ‘몸의 언어’는 지금도 살아 있다. 영화관에서, 체육관에서, 누군가의 인내심 속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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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그를 다시 만난 이 전시의 마지막에서, 아트보이는 문득 이렇게 중얼거린다. “사람은 맞으면 강해진다. 그리고 기억되면, 영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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