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th ACGHK 2012, 홍콩에서 배운 문화의 품격. 문화는 사치일까? 우리는 아직도 이 질문 앞에서 주춤거린다. 한국의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떠올리면, 언제부턴가 ‘무료 입장’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정말로 좋은 일일까? ‘문화 민주화’라는 명목 아래, 우리는 ‘문화의 품격’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아트보이는 이 질문을 안고 2012년 홍콩에서 열린 제14회 애니콤 & 게임 홍콩(ACGHK)을 찾았다. 그곳에서 문화를 돈 주고 ‘사는 법’을 목격했다. 그리고 납득했다. 문화는 공짜가 아니다. 문화를 공짜로 접하면, 공짜인 만큼만 느끼고 나간다.
홍콩 컨벤션센터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건 긴 줄이었다. 관람객들은 사전 예매 티켓을 들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3만 원 정도의 티켓 가격.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분과 기대가 눈에 보였다.
이 공간은 단순한 게임과 만화, 피규어 전시가 아니었다. 하위문화로 치부되던 서브컬처가 중심으로 이동한 공간이었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공간, 그것이 ACGHK의 진짜 매력이다. 관객들은 돈을 냈기 때문에 집중했고, 사진을 찍을 때는 서로 양보했고, 행사장은 북적였지만 질서는 있었다. 문화는 무료가 될 때 퇴색된다. 아트보이는 한국의 국립 박물관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료가 되자 관람객의 태도는 달라졌다. 유치원 단체관람객이 삼삼오오 뛰어다녔고, 사진 촬영 금지 구역에서 플래시가 번쩍이며 작품 옆에서 소리를 지르던 아이들을 말리는 보호자는 없었다. 문화에 대한 존중은 ‘비용’과 밀접하다.
돈을 내고 보는 전시와 무료로 들어온 전시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태도를 달리한다. 그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심리다. 돈을 내고 문화를 소비한다는 것. 문화는 공짜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높은 가격이 능사는 아니다. 핵심은 ‘가치의 인식’이다.
내가 돈을 내고 어떤 공연이나 전시를 본다는 건 그 문화 콘텐츠를 ‘상품’이자 ‘경험’으로 존중한다는 뜻이다. ACGHK 2012에서 아트보이는 사람들의 소비가 곧 문화였다. 누구도 창작자에게 “이거 그냥 주세요”라고 하지 않는다. 한정판 피규어, 아트북, 전시 콜라보 티셔츠 모두 줄을 서서 구입한다. 거기엔 “내가 지불한 만큼 누릴 권리와 책임”이 담겨 있다.
홍콩의 ‘문화자본’은 공간에서 드러난다. ACGHK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자본이다. 문화산업의 축소판이자 창작 생태계의 완결체다. 여기선 단지 전시를 ‘즐기기만’ 하지 않는다. 크리에이터 부스에서는 독립 작가들이 자비로 인쇄한 도서와 팬아트를 전시하며, 거대한 기업관에서는 Sony, Bandai, Hot Toys 등이 거대한 세계관을 경험하게 만든다.
작품은 더 이상 스크린 안의 허상이 아니다. 우리 앞에 실물로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돈을 내고 ‘세계관’을 산다. 스토리텔링이 상품이 되고, 경험이 화폐가 된다. 한국의 문화 소비, ‘공짜’라는 함정. 다시 우리는 묻는다. 문화는 정말 무료여야 하는가? 대중에게 문화를 쉽게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접근성’이라는 명분이 ‘공짜’라는 무책임으로 변질될 때, 그 문화는 존중받지 못한다.
사설 전시장에서 3만 원의 입장료도 비싸다고 생각하는 관람객. 무료가 아니면 아예 가지 않겠다는 문화 소비자. 이런 태도는 결국, 작가와 창작자들에게 더 큰 벽이 된다. 문화를 ‘돈’으로 평가하자는 것이 아니다. 돈을 냈기 때문에 문화가 우월하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지불한 ‘비용’은 곧 ‘가치에 대한 책임감’이다.
문화는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참여하고, 감상하는 과정이다. 14th ACGHK 2012에서 아트보이가 배운 건 하나다. 문화는 반드시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사야 진짜로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