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1일부터 14일까지, COEX Hall C. 서울의 대형 전시장 안에 수백 개의 감각이 흐르고 있었다. 제29회 화랑미술제, 국내 최초의 아트페어이자 예술이 ‘시장’과 ‘시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는 장면들.
1979년부터 시작된 이 박람회는 단지 ‘판매’의 공간이 아니라 작가, 화랑, 관람자, 수집가가 교차하는 공공의 감각지형이다. 이번 미술제에는 신진작가의 실험적인 드로잉부터 해외 유명 작가의 회화, 조각, 설치에 이르기까지 수백 점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놓였다. 그 모든 작품은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모든 감각은 ‘한 지붕 아래’ 있었다.
아트보이는 작품을 보며 누군가의 의도를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작품이 내게 떠올리게 한 장면이나 기분에 집중했다. 그림은 하나의 이미지지만, 그 이미지가 아트보이 안에서 만들어내는 감정의 진폭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작가는 창조했지만, 그 창조를 통해 감정을 ‘지배’하지 않는다. 화랑은 작품을 전시하지만, 그 공간이 반드시 감상을 지시하진 않는다. 이것은 마치 노자의 한 문장을 닮았다. “낳으면서도 낳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지으면서도 지은 것을 내 뜻대로 만들지 않고, 자라게 하면서도 자라는 것을 지배하지 않네.”
작품이 ‘판매’된다는 사실은 예술이 자본에 편입되었다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삶으로 ‘이입’된다는 사건이기도 하다. 작품이 걸린 벽은 단지 소유의 증표가 아니라, 기억의 확장이다. 2011 화랑미술제는 단지 경제적 흐름을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국 미술의 온도와 방향, 그리고 ‘지금 이곳의 감각’이 어디쯤 와 있는지를 진단해주는 거울이었다.
전시장을 걸으며, 아트보이는 소유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는 감정을 느꼈다. 작품은 눈앞에 있었지만, 그 모든 이미지는 소유가 아닌 사유, 판매가 아닌 참여의 언어로 다가왔다. 이 미술제는 어떤 작품을 사고팔았는지보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나누었는지가 더 오래 남는 기록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