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 하늘이 유난히 청명했던 어느 날, 아트보이는 시간을 500년 거슬러 올라갔다. 그곳엔 ‘르네상스’라는 이름의 감각적 질서가 있었고, 그 중심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었다. 전시 타이틀은 “Da Vinci: The Genius.”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정의다. 그는 단지 천재가 아니라, 지식과 감각, 기술과 예술의 교차점을 거침없이 오간 유일한 존재였다.
전시장 초입에서 마주한 것은 다빈치의 코덱스(Codices). 그의 발명 아이디어와 설계, 기록이 손글씨로 남아 있다. 그것은 단순한 도면이 아니라, 생각의 흐름이 종이에 뚫고 나온 감각의 지도처럼 보였다. 헬리콥터, 탱크, 잠수함, 자전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기술의 기본 구조가 이미 500년 전에 이 남자의 머릿속에 존재했다는 사실. 아트보이는 그것을 보고 압도되기보다, 오히려 정적(靜的)인 경이감에 휩싸였다.
회화 섹션에 들어서면, "L’Uomo Vitruviano(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도)*"가 있다. 정확하고 우아하며 수학적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 선과 원이 얼마나 감정적이라는 사실이다. La Madonna Litta, La Madonna Benois, San Gerolano Penitente, Ritratto di Musico. 그의 그림들은 기도처럼 조용하고, 과학처럼 명확하다. 아트보이는 그 사이의 떨림에서 예술촉감을 느꼈다. 그것은 사유가 형태로 빚어진 순간이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소 앞에 선다. Mona Lisa.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그녀의 미소는 신비롭고, 정적이며, 설명할 수 없다고. 하지만 아트보이는 그날, 전시장에서 그 미소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그건 다빈치 자신이 감정을 숨기기 위해 남긴 모순의 조각이다.” ‘모나리자의 비밀’ 섹션에서는 X-ray, CT, 적외선 스캔을 통해 드러난 수많은 분석 자료들이 공개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분석이 많아질수록 그녀는 더욱 모호해진다. 감정은 기술로 절대 완전히 해독되지 않는다.
전시 후반부, 해부학 드로잉 40여 종과 구조적 기계 도면을 지나며 문득 전시 벽에 새겨진 문장이 스친다. “풍부한 재능은 풍부한 수맥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곳에서 출구를 찾는다.” 아트보이는 이 문장에서 다빈치가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직감했다. 예술, 과학, 수학, 해부학, 건축, 음악, 천문, 철학. 그는 단 하나의 통로가 아닌, 모든 감각의 출구를 찾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우리 안의 수맥을 얼마나 많은 방향으로 흘려보내고 있는가?”
다빈치와의 500년 간의 거리. 그 거리에서 아트보이는 예술과 과학, 감정과 논리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예술은 결국,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감각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그리고 다빈치는 그것을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체험한 사람이다. 아트보이는 전시장을 나오며 아트보이의 수맥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질문 자체가 오늘의 예술촉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