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도시를 걷는 방식이다, 아트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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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도로 중앙을 가로지르는 철길과 그를 따라 심어진 가로수였다. 전차는 정해진 속도로 차분하게 달렸고, 도시 전체는 마치 시계장치처럼 정교하고 안정적인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안정감 속에서 문득 아트보이의 마음속에서도 조용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낯선 도시에서 되살아난 오래된 기억의 실타래. 그리고 그 기억은 아주 구체적인 역사와 마주하게 했다. 독일이라는 나라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오히려 어떤 세대에게는 각인되어 있는 이름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까지, 한국은 6.25 전쟁 이후 가난에 찌든 시대를 견뎌야 했다. 풀뿌리, 나무껍질로 허기를 달래고, 전기조차 없어 간솔을 태우며 밤길을 걸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에게 꿈이란 말은 사치였다. 그러한 시절에 우리 부모 세대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 그리고 국가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서 독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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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발전과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필사적인 선택을 했다. 독일과의 협약을 통해 광산 노동자와 간호사를 파견함으로써 외화를 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남자는 광부로, 여자는 간호사로, 그렇게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이역만리 독일 땅으로 건너갔다. 뒤셀도르프 역시 그 여정의 하나였을 것이다. 아트보이는 이곳을 밟으며, 그 발자국을 되새겼다. 당시 그들이 조국으로 송금한 돈은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30%에 달하는 규모였고, 그것이야말로 산업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동생의 학비를 대고, 한국의 산업을 조금씩 움직이게 한 힘. 그리하여 1964년엔 역사적인 1억 달러 수출을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수출 2,000억 불의 시대를 가능하게 한 첫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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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성장에는 그림자가 있다. 물질적 풍요가 어느 정도 달성된 지금, 우리의 문화 감각은 여전히 성장통을 앓고 있다. 문화 경제는 여전히 피상적이고, 문화적 유익함에 대한 인식은 충분치 않다. 우리는 먹고, 입는 것엔 익숙하지만, 예술을 향유하는 데 필요한 마음의 여유는 부족하다. 뒤셀도르프에서 체감한 가장 인상 깊은 요소는 ‘문화의 계속성’이었다. 겉보기에 세련되고 단정한 유럽 도시의 외양 뒤에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무형의 정신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산을 현재의 삶과 결합시켜, 미래로 전달하려는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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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유람선과도 같다. 그것은 기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서 얻어지는 효율성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그 배에 탑승한 사람들은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 그리고 ‘무언가’를 잊지 않기 위해 탄다. 그것은 잠시 머물렀다가 지나치는 ‘정류장’일 수도 있고, 새로운 삶의 영감을 주는 ‘항구’일 수도 있다. 우리가 문화를 대할 때, 너무 자주 그것을 경제적인 가치로만 측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화는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종종 무용하다. 전쟁을 막지도 못하고, 현실의 불의를 당장 해결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문화는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고, 불의를 만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에 저항하는 힘, 지치지 않고 나아가게 만드는 지속적인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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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끊임없는 시행착오 속에서 ‘계속성’을 추구해온 인간의 정신이다. 그리고 그 계속성은 결국 ‘도의성’으로 이어진다. 도의성이란, 공정함에 대한 본질적인 감각이며, 타인을 향한 존중이며,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내면의 기준이다. 뒤셀도르프의 문화 체험은 아트보이로 하여금 다음 세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집 한 채, 안정된 자산, 혹은 경쟁력 있는 교육 시스템? 물론 그 모든 것도 중요하지만, 아트보이는 ‘계속성’이라는 문화적 유산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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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문화는 단절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의 우리 또한, 어딘가에서 받은 것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 문화는 옷차림일 수도, 음악일 수도, 피규어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달되는 태도’이다. 그것이야말로 문화의 생명력이다. 공식 포스터가 전시된 FUNKIN’ STYLEZ 2011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댄스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트보이는 다시금 느꼈다. 예술은 지금 여기를 살게 만드는 리듬이며, 허무를 밀어내는 희망이다. 그 리듬 위에 우리 모두는, 각자의 무게와 각자의 이야기를 얹어 춤을 추고 있다. 그 춤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춤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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