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고 되찾은 것, 그리고 창조와 경영의 균형. 스튜디오 지브리 전시와 해체 국면을 둘러싼 문화사적 단상.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2013년 여름을 시작으로, 용산역 아이파크몰, 부산시립미술관까지 이어진 지브리 3부작 전시는 단지 애니메이션을 소비하는 축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심이라는 내면 세계와, 산업이라는 외면 세계 사이에 선 지브리라는 거인의 자화상이었다.
‘레이아웃전’, ‘입체조형전’, ‘입체건축전’. 이 세 전시는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존재가 애니메이션의 작화 기술과 장면 구성, 세계관 구축, 나아가 도시적 상상력까지 얼마나 치밀하게 접근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동시에 전시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근간이 단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천재의 창작성만이 아니라, 조직적 제작 방식과 일본적 가치, 그리고 전후 민주주의의 공기라는 다층적 구조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준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만들어진 신화’가 아니다. 1985년 도쿠마 쇼텐의 투자를 통해 설립된 이 스튜디오는 미야자키 하야오,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 그리고 경영자인 도쿠마 야스요시라는 삼두체계 아래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고, 이후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로 이어지며 '지브리 신화'가 구축되었다. 하지만 이 신화의 이면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전반의 변화와, 전후 민주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시대 전환이 숨어 있다. 지브리는 초기부터 디즈니에 대한 콤플렉스를 예술적 독립성으로 승화시켜 왔다. 미국식 '유쾌함'을 중심에 둔 애니메이션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지브리는 '정서적 리얼리즘'을 선보였다. 복잡한 캐릭터의 내면, 슬픔과 고요의 간극,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직시하는 생태주의적 메시지는 지브리의 고유한 색깔이 되었다.
하지만 이처럼 고유한 색채를 지녔던 지브리도 2010년대에 접어들며 위기를 맞이한다. <마루 밑 아리에티> 이후의 작품들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고, 내부적으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제작 부문 해산, 정사원 중심의 제작 방식 등 ‘지브리 시스템’에 대한 재조정이 요구되기 시작한다.
지브리는 ‘오타쿠 문화’와의 경계를 뚜렷이 하며, 애니메이션의 보편성과 예술성을 강조해왔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이 성적 코드에 편중된 오타쿠 산업으로 편향되는 것과는 다른 길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코쿠리코 언덕에서>, <바람이 분다> 같은 작품에서는 일본의 역사에 대한 재해석과 민족주의적 기조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는 지브리가 유지하던 보편성의 기조가 시대적 요구와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브리의 해체는 단순한 경영 위기의 결과인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산업과 예술, 창의성과 경영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는 진지한 선택이다. 정사원 중심의 제작 시스템, 하청 없는 고집, 자율적 노동환경, 이 모든 것은 지브리가 추구하던 유토피아적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시장에서 끊임없는 경쟁을 요구받는 현실과 충돌한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시대가 끝나가는 장면 앞에 서 있다. 하지만 그것은 종말이 아니라, 변환이다. 지브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분화되고 재탄생할 것이다. 그 흔적은 전시회로 남고, 애니메이션 팬의 기억으로 남고, 도시 곳곳의 미술관과 상상력 속에 다시 피어난다. 결국 창조는 시스템이다. 단순한 영감이 아니라, 경영과 배치, 제작과 유통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선 무엇보다 중요한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바로 ‘믿음’이다. 스튜디오 지브리를 이끌었던 세 인물의 믿음처럼. 예술은, 결국 사람의 믿음을 먹고 자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