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는 감정을 조형하는 예술이다. 아트토이컬처 2014에서 그 증거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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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토이컬처 2014: 장난감에서 기념비로, 기억에서 질문으로〉누군가는 인형을 꺼낸다. 누군가는 상자를 닫는다. 그러나 아트보이는 '아트토이컬처 2014'의 기획 의도를 바라보며, ‘보통의 물건들이 어떻게 기념비가 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토이는 더 이상 ‘아이의 소유물’이 아니고, 아트는 결코 ‘전시장에서만 허용된 감상’이 아니다. 2014년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모인 수많은 피규어들과 창작자들의 목소리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평범함과 특별함, 장난감과 수집품, 어른과 아이 사이를 넘나드는 진짜 '문화의 결'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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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토이컬처는 ‘키덜트’라는 단어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어쩌면, ‘어른이 된 어린이들’이 ‘세상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는 법을 알려주는 전시였는지도 모른다. 사랑에서 시작된 인형 브랜드 ‘어글리돌’, 생존을 위해 진화하는 개구리 ‘트웰브닷’, 한획한획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아키노리 오이시, 그리고 ‘조용한 열정’을 조형으로 옮긴 인스팅트토이. 이들은 ‘작은 것’이 가진 내면의 울림으로 예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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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은 다시 태어난다 – 어글리돌(UglyDoll). 예술은 언제나 사랑에서 시작된다. 어글리돌은 한 연인의 손편지에서 태어난다. 데이비드 호바스가 써 내려간 그림 캐릭터는 김선민의 손에서 천으로 변했고, 사랑은 캐릭터로 생명을 얻는다. 그 순간 인형은 단순한 인형이 아니다. 감정이 깃든 물성(material)이 된다. 이처럼 아트토이는 감정을 부드럽게 동여매는 도구다. 실제하지 않았던 얼굴에 성격이 생기고, 이름이 붙고, 그로 인해 우리는 그것에 마음을 준다. 그리고 그 인형은 우리를 기억한다. 우리가 버려도, 보관함에 잊혀져도, 그들은 마음속 '존재의 증명'으로 남는다. 그것이 어글리돌이 가진 서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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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는 개구리 – 트웰브닷(twelveDot). 트웰브닷의 개구리는 생존의 서사를 몸으로 말한다. ‘Apocalypse Frog’는 생태 위기의 경고이자, 척박한 지구에서 인간처럼 진화한 마지막 생명체다. 작가는 말한다. 이 개구리는 무분별한 개발로 몰락한 인류 이후를 상상한다. '작은 생명체의 극단적 진화'를 통해 현대 사회를 되비추는 이 작품은 아트토이가 단지 귀여운 오브제가 아니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사랑스럽고 묵직한’, 그 묘한 불균형은 예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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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수집가 – 아키노리 오이시(Akinori Oishi). 그의 캐릭터들은 소리 없이 웃고 있다. 아키노리 오이시는 캐릭터를 그린다기보다 ‘세상의 미소’를 수집한다. 그는 도시 풍경 곳곳에 작은 캐릭터를 그려 넣으며,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만든다. 아날로그의 고집으로 캐릭터를 한 줄 한 줄 그려내는 작업은, 디지털 복제 시대에서 정성스런 필연을 말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의 ‘스마일’을 마주하며 잊었던 감정들을 되찾는다. 그의 세계는 도심 속 생기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 그리는 그림’이다. 실험적 본능 – 인스팅트 토이(INSTINCT TOY). 히로토 오쿠보의 작품은 몬스터다. 아니, 몬스터로 보이지만 실은 매우 내밀하고 정제된 감정 덩어리다. 리퀴드 몬스터 ‘Inc’는 작가의 본능과 조형 실험의 산물이다. ‘괴물’은 공포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어딘지 외롭고 순진하다. 인스팅트 토이의 매력은 그 경계다. 작품은 정서적이다. 어딘가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예술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무섭지만 꼭 껴안고 자던 인형처럼, 그의 토이는 심리적 푹신함을 품고 있다. 실은, 우리 모두 리퀴드 몬스터다. 형태는 다르지만, 마음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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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토이컬처는 문화인가, 취향인가. 아트토이컬처 2014는 단지 장난감을 사고파는 전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창작자와 감상자 모두에게 ‘취향의 기준’을 묻는 질문장이었다. 피규어를 사는 것은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수집하는 행위다. 그 속에는 각자의 감정, 해석, 그리고 시대적 기호가 담겨 있다. 오늘날 토이는 더 이상 ‘아동용 소비재’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과 기억의 조형물이며, 작가와 감상자의 심리적 공진화의 결과다. 그래서 아트토이는 예술이다. 그것을 예술로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토이를 소비하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방식이다. 전시는 끝났지만, 아트토이컬처 2014는 여전히 아트보이 책상 위에 있다. 작은 피규어 하나가 매일 아트보이에게 말을 건다. “오늘도 너의 이야기를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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