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Moment — 내가 나로 존재하는 마법의 순간, 박미진의 회화가 던지는 자각의 시선〉도심의 한복판, 갤러리 엘르의 조용한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색채로 뒤덮인 심리적 풍경과 마주한다. 그곳에 있는 것은 단지 아름다운 여성의 초상이 아니다. 박미진 작가가 그려낸 인물은 현실과 환상 사이의 균열, 사랑과 자각의 문턱에 선 인간의 내면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거울을 마주 본 순간 우리에게 깃드는 정체 모를 떨림. 작가는 그것을 ‘Magic Moment’라 부른다. 내면의 자각, 여신을 만나는 시간. 박미진의 회화는 단순한 감상 그 이상이다. 그것은 나의 얼굴을 본다는 의미이고, 동시에 내가 누구였는가를 기억해내는 의식의 회귀다. 작가는 캔버스를 단지 그림의 매개체가 아니라, 마주보는 또 하나의 거울로 사용한다. 감상자는 작품 속 인물을 보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녀는 묻는다. “사랑받을 때,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가?” “그 순간의 당신은 누구였는가?” 그리하여 그녀의 회화는 자서전이자 초상화이며, 때론 일기처럼 속삭인다. 작가는 스스로 그 ‘여신’의 얼굴을 빌려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붓끝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가 감상하는 것은 ‘여자’가 아닌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의 ‘나’를 찾게 된다. 분홍빛 설렘, 감정의 온도를 담은 화법. ‘Magic Moment’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개인전에서는 사랑받는 여성의 다채로운 감정들이 중심에 있다. 단순히 아름다움으로 치장된 여인의 모습이 아니다. 거기에는 사랑받을 때의 수줍음, 인정받을 때의 설렘, 자각할 때의 전율이 담겨 있다.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었을까. 박미진은 색을, 빛을, 표정을, 선을 통해 그려낸다. 작가의 붓은 감정을 따라 흔들린다. 그녀의 대표적인 화법은 분홍, 흰색, 연보라 등의 부드럽고 투명한 색조를 중심으로 형상화된다. 붓질은 종종 거칠지 않고 섬세하며, 빛이 스며든 듯한 투명도는 감정의 레이어를 연상시킨다. 인물화이지만 누군가의 초상이라기보다, 감정 그 자체의 형상화에 가깝다. 그녀의 화면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꿈과 같다. 실루엣은 선명하면서도 무겁지 않다. 그리고 그녀의 인물들은 언제나 ‘몽환적이다.’ 일상성에서 살짝 떠오른 표정들. 관람자는 그 ‘뜨임’을 감지하게 된다.
감성 회화와 현대성의 공존. 박미진은 흔히 ‘감성 회화’라는 말로 정의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감상적이라는 의미에서 오는 오해일 수 있다. 그녀의 회화는 분명 감정을 다루지만,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녀가 다루는 감정이 ‘지금 여기’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미진의 작업은 고전적 인물화의 미학과 현대적 감각의 물성을 동시에 지닌다. 그 감성은 전통 회화의 감성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녀의 회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의 감정 지형을 지도처럼 펼쳐 보인다. 이는 단지 여성 작가로서의 시선이 아닌, 인간의 내면 전체에 대한 섬세한 탐색이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정의에 정확히 부합하는 작업이다. ‘지금’을 살고 있는 작가가, ‘지금’의 인간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감상자에게 감각적으로 와 닿는다. 이보다 더 현대적일 수는 없다. 익숙하지만 낯선, 낯설지만 따뜻한. 전시장을 돌다 보면 느끼게 된다. 익숙한 감정인데, 표현은 낯설다. 그 낯섦이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 이유는 따뜻하기 때문이다. 박미진의 회화는 흔히 말하는 ‘쿨’한 현대미술이 아니다. 그녀의 작품은 따뜻하다. 그것은 그녀가 사람을 그리고, 관계를 그리고, 사랑받고 싶은 감정을 그리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신’을 그렸지만, 신화적인 위엄보다는 일상적인 기적을 표현한다.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모두 여신이 될 수 있다. 그녀의 인물들은 화려하지 않고도 숭고하다. 그들은 내 삶 안에 있었던 어느 순간의 ‘나’와 무척 닮아 있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경계에서. 박미진 작가는 최근 영화관 CGV와 협업하여 예술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실험하고 있다. 전시 공간에서만 예술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감각 속에서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만들려는 시도다. 작가의 작품이 티켓에 인쇄되고, 전시가 상영관 벽면을 따라 열린다. 이러한 시도는 단순한 마케팅 협업이 아니다. 그녀의 회화가 대중과 연결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새로운 플랫폼이다. 그녀는 이제 미술관과 갤러리의 벽을 넘어, 우리의 일상 속 ‘감정’으로 침투한다.
작가와의 동시대성, 그리고 나의 거울. 아트보이는 박미진 작가의 작업이 어떤 미학적 경지를 넘어서서, 감상자로서의 내 안의 ‘기억’을 건드렸음을 인정해야겠다. 그 기억은 단지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여전히 아트보이 안에 살아 있는 내면의 감정이다. 그녀의 인물은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면서도 너무도 아트보이를 닮아 있다. 사랑받고 싶었던 순간의 나, 잊고 있던 나의 얼굴, 스스로를 미워하다 문득 거울을 통해 용서했던 그 순간. 그 순간, 마법이 일어난다. 박미진의 회화는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그녀는 그것을 캔버스 위에 기록한다. 그것은 감정의 지도이자, 기억의 색채이며, 자각의 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을 다시 느끼는 순간, 마법처럼 ‘나’ 자신을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