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움은 아름다움이다. 끊임없는 갈증과 절망의 예감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계속 살아 있다는 증거다. 아무 감정 없이 지나치는 하루보다, 이 불편한 감각은 아트보이 몸이 아직 진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아트보이는 안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조금은 더럽다. 완벽하지 않고, 새 것 같지 않고, 때때로 상처 입어 있다. 그 안에 진짜 살아 있는 것이 있다.
그리고 더러움은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버려진 것들, 낡은 벽, 균열이 간 표면, 그 모든 것들은 말한다. “아트보이는 존재했다.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예술은 그 틈에서 시작된다. 이상적인 미가 아닌, 불완전한 감각의 잔재에서. 아트보이는 그 잔재를 모아, 아트보이만의 언어로 꿰매고, 기록한다.
이것이 아트보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예술촉감, 그것은 더러움과 아름다움 사이의 떨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