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에 비친 한 장면. 아트보이는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아트보이만이 아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는 왠지 모를 소녀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건 단순히 그림이라기보다, 감정을 머금은 시선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을 보며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기고, 그 속에서 아트보이의 오래된 기억들과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감정들이 조용히 흔들린다.
한 작가가 작업에 몰입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붓을 드는 손끝, 천천히 그려가는 표정, 작업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온기가 묻어난다. 그 섬세한 작업에서는 어느 순간 손이 노련해진다. 반복된 움직임 속에, 감각이 정제된다. 아트보이는 그 장면 속에서 예술의 진심을 본다. 그리고 그 이름을 떠올린다. Kaikai Kiki.
카이카이 키키는 단순한 예술 단체가 아니다. 그곳은 아티스트가 모여 '함께
살아내는' 공간이자
작업실이자, 시스템이자, 실험실이다. Takashi
Murakami(무라카미 다카시)는 “미술계에도 연예기획사처럼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집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01년, 그는 Kaikai Kiki Co., Ltd.를
설립한다. 이곳은 공장형 스튜디오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작품은 24시간 교대로
제작되며, 그림 하나가 작가 개인의 손만이 아니라, 집단적 감각의 결과물이 된다.
예술가와 기업가, 화랑과 마케팅, 창작과 생산의 경계를 허문 하이브리드 아트
플랫폼. Kaikai Kiki는 그 가능성을 드러낸다.
아트보이는 그들이 그린 세계를 통해 질문하게 된다. 예술은 개인의 손끝에만 있는가? 혹은, 예술이란 더 넓은 시스템과 협업 안에서도 충분히 감정의 깊이를 품을 수 있는가? Kaikai Kiki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듯하다. "예술은 감각과 노동이 교차하는 곳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아트보이가 바라본 소녀의 모습, 그리고 그 쇼윈도 속 그림들이 남긴 여운은, 결국 어떤 시스템이 아닌, 감각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 것이다. Kaikai Kiki라는 이름은 그래서 여전히, 예술촉감의 언어로 아트보이 안에 진하게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