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를 마주하는 시간, 루브르에서, 바람을 생각하며. 예술은 언제나 개별적인 소우주다. 한 사람의 작가가 삶을 통과하며 만든 모든 작품들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감정과 철학 속에서 태어나지만, 그 모든 개별성은 다시 하나로 이어져 거대한 우주를 이룬다. 그리하여 우리가 작품 하나를 마주할 때, 사실은 한 사람의 인생, 그 인생이 품은 시대, 그 시대가 지닌 세계를 함께 마주하는 셈이다. 아트보이는 파리에서 그 거대한 예술의 우주를 목격했다. 루브르 뮤지엄, 그곳에서 말이다.
천장의 그림처럼, 인생을 건 예술. 아트보이가 루브르를 찾았을 때,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고요한 벽화의 이미지였다. 한 화가가 교회의 광대한 천장에 장대한 시간을 들여 그리는 그림. 그것은 고독하고 고된 작업이며, 어쩌면 일생을 다 바쳐야만 완성되는 긴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 화가는 우리가 모르는 어느 순간에 그림을 시작하고, 언젠가 시간이 흐른 후 완성된 일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작가가 구축해나가는 우주의 단편을 경험하게 된다. 마치 숨결처럼 이어진 그의 손길과 붓끝이 만들어낸 시간의 조각들. 그러니 우리는 그 그림을 단순한 시각적 체험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것은 내성적인 감정이자 존재의 확인이다. 그 작가가 지금 여기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는 그의 붓 끝을 통해 짐작하게 된다. 루브르에 걸린 수많은 작품들 역시 그러했다. 수 세기 동안,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각기 다른 소우주들이 한데 모인 이 공간은 거대한 '예술의 우주' 그 자체였다. 각각의 방마다 감정이 달랐고, 조명이 달랐으며, 시간이 달랐다.
작가와 작가 사이의 결부, 그것이 예술을 특별하게 한다. 예술의 진화란 단순히 한 사람의 작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것은, 작품과 작품 사이, 작가와 작가 사이의 결부 방식이다. 시대와 사조를 뛰어넘어, 어떤 정서적 동시성 혹은 시각적 대화가 발생한다는 점.
한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다가, 문득 수백 년 전 다른 작가의 그것과 이어지는 감각이 찾아온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 예술은 직선적인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수평적인 차원에서도 깊이 있게 결부된다. 예를 들어 모나리자를 마주할 때, 우리는 단순히 한 여인의 표정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 배경과 의복, 시선,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시간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파리를 걷고 있는 아트보이의 시간까지도 포괄하는 감각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예술이란 단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연결된 것이라는 사실을.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자 위안이다. 동시대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움직임은, 아트보이의 예술적 호흡과도 맞물린다. 그들이 다음에 무엇을 만들어낼지 떠올려보는 순간, 아트보이는 동시에 아트보이가 다음에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아트보이가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를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완성된 천장을 아직 다 보지 못했지만, 그 일부를 본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감동과 설렘을 얻는다. 그것이 예술의 마법이다.
루브르 뮤지엄, 예술의 성전. 루브르는 단지 박물관이 아니다. 그것은 성전이며 기록이며, 거대한 예술적 시간의 보존소다. 30만 점 이상의 작품들이 이곳에 있으며, 그 중에는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와 같은 이름만으로도 전율을 일으키는 존재들이 있다. 입구에 위치한 유리 피라미드는 과거와 현재의 시각이 만나는 상징처럼 보였다. 고대의 예술과 현대의 건축이 맞닿는 접점에서, 아트보이는 아트보이의 현재를 더욱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시간의 터널을 지난 듯한 감각이 든다. 이집트, 그리스, 르네상스, 그리고 프랑스. 각 시대의 작가들은 각자의 언어로 우주를 건축했고, 루브르는 그 우주의 지도였다. 작가란, 우주를 걷는 자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우주를 구성하는 일이다. 그 우주는 언젠가 완성될 수도 있고, 평생에 걸쳐 완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우주를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다.
아트보이의 우주, 그리고 타인의 우주. 그것들이 겹치고, 연결되고, 함께 확장될 때 비로소 예술은 존재한다. 루브르에서 아트보이는 그런 순간을 만났다. 그리고 오늘도, 아트보이의 우주를 확장하기 위한 한 조각의 그림을 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