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의 렌즈 – 비비안 마이어의 조용한 외침〉거리는 흔들리고, 도시의 표정은 무심하게 스쳐 간다. 그러한 순간들을 끊임없이 응시하며, 한 여성은 그림자 속에서 셔터를 눌렀다.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 그녀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세상의 진실을 들여다보았지만, 자신은 늘 프레임 밖에 존재했다. 보모이자 가정부, 그리고 정체를 감춘 사진작가. 그녀의 삶은 기록되지 않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단지 필름 속에서만, 무수한 인물들의 눈빛과 거리의 온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2009년 4월, 시카고의 한 공원 벤치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난 그녀는, 그 죽음조차도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뻔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그녀는 세상에 발굴되기 시작했다. 유품으로 남겨진 수천 롤의 필름과 네거티브, 그리고 다이어리와 편지들이 경매로 흘러가면서, 운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사진 애호가이자 역사학도였던 존 말루프(John Maloof)가 그녀의 필름을 발견한 것은 바로 그 기적의 시작이었다.
아무도 존재를 몰랐던 작가, 그러나 수십 년간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 풍경, 아이들과 여성들, 노숙자,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프레임에 가두어온 천재적인 눈. 그녀의 필름 속에는 ‘사진의 이유’가 있었다. 시선을 사로잡는 구성,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빛과 구도, 무엇보다 피사체를 향한 강렬하고도 깊은 공감. 이것이야말로, 아트보이가 감탄한 비비안 마이어의 예술이었다.
작가로서 그녀가 택한 방식은 철저히 사적이고 은밀한 것이었다. 보모로 일하면서 카메라를 목에 건 채 거리로 나섰고,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을 데리고 낯선 동네를 누비며 사회의 이면을 찍었다. 당대 여성 사진작가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1950~70년대 뉴욕과 시카고는 여성에게 결코 관대하지 않은 도시였다. 특히 무일푼으로 살아가는 여성, 이민자 배경의 여성, 예술에 미쳐 있는 여성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그녀는 거리의 위험과 무관심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카메라를 든 여성이라는 위치는 오히려 사람들을 방심하게 만들었고, 비비안 마이어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어쩌면 철저히 ‘기록’을 위해 존재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이름도, 얼굴도, 작가로서의 명성도 바라지 않았다. 수천 통의 편지, 메모, 수집된 신문 스크랩, 짧은 글귀들이 기록된 노트 속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세계를 관찰하고, 질문하며, 느꼈다. 그녀의 삶 자체가 하나의 아카이빙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하길 바라며 남겨놓은 흔적, 혹은 영원히 발견되지 않기를 바란 은폐.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역설적인 예술가의 초상.
2013년 다큐멘터리 영화 〈Finding Vivian Maier〉는 그녀의 삶과 작품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감독인 말루프는 그녀가 생전에 얼마나 외롭고 불안정한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그녀에게 갖는 ‘로망’을 다시 한 번 되짚게 만든다. 비비안 마이어는 예술가의 고독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의 렌즈는 늘 타인을 향해 있었다. 자신은 지우고, 세상을 남겼다.
몇 해 전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은 아트보이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필름 위에 얹힌 먼지 하나, 손글씨로 적힌 날짜 하나, 그리고 그녀가 직접 찍은 셀프포트레이트 한 장 한 장이 마치 시간의 연작처럼 감각을 자극했다. 전시장 한 편에 놓인 낡은 트렁크, 필름 리더기, 스크랩북은 그녀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이자, 사라져버린 한 시대의 기억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하며, ‘기록’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안에 진정한 삶의 순간, 영혼의 교감, 예술적 통찰이 존재하는가?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내면적이고 외로운 작업인지를 일깨워준다. 그녀는 결코 작가로 인정받기 위해 찍지 않았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의 방식을 기록하고자 했고, 그것이 바로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였다.
그녀의 사진 속 인물들은 말이 없다. 그러나 시선을 돌릴 수 없다. 그것이 그녀의 렌즈다. 관찰자의 침묵 속에서 강력한 서사를 탄생시킨 여인.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비비안 마이어의 필름이 더 발견되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렌즈를 통해 다시 한번 인간의 진실한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 이름 없이 예술을 이룬 사람. 그녀는 죽어서야 ‘작가’가 되었지만, 누구보다도 삶의 프레임을 아름답게 남긴 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