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그 거울은 자본, 제도, 철학, 시스템, 그리고 사람에 의해 끊임없이 닦여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그것이 망가진 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특히 한국 미술시장의 구조와 태도는 아직도 선진 미술시장에 비해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
한 예로, 팝아트에 대한 뜬금없는 관심이 국내 미술계에서 벌어진 적이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한 작품이 90억 원에 낙찰되자, 그가 갑자기 ‘핫한 작가’로 포지셔닝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예술의 본질보다 ‘이슈’에 반응하는 한국 미술시장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심지어 만화 한 컷 같다고 폄하되던 작품이 천문학적 가치를 갖게 되자, ‘우리도 뭔가 해보자’는 조급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러한 감성적 소비는 한국 미술계의 고질적 문제다. 전문가에 의한 감정, 시스템에 의한 유통, 그리고 시장에서의 신뢰 대신, 여론에 의해 흔들리고 화제성에 따라 움직인다. 작품의 경제적 가치가 어떻게 산출되는지, 컬렉터는 왜 존재해야 하는지, 작품은 어떻게 유통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 질문들이 생략된 채, 미술은 '갑자기 비싸진 상품'처럼 여겨진다.
이런 환경에서 미술가가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창작에 집중하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가 우선시된다. 아트보이 또한 긴 시간 동안 예술가로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작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러던 중, 출구를 찾고자 한 도시가 있었다. 바로 뉴욕이다.
뉴욕은 미술시장의 메카다. 마치 금융에 월가가 있다면, 예술에는 뉴욕이 있다. 뉴욕에 도착한 아트보이는 가장 먼저 53번가에 위치한 세계 최초의 현대미술관 ‘모마(MoMA)’를 찾았다. 이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적 경험이다. 고흐, 피카소, 앤디워홀, 무라카미 다카시 등 시대를 관통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관객을 압도한다.
모마(MoMA)의 가장 큰 미덕은 ‘수용과 진화’이다.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동시대성과 대중성을 잃지 않는 시스템은 미술 콘텐츠가 단지 ‘멋’이 아닌 ‘산업’으로 작동되게 한다. 기획자, 큐레이터, 아카이브 전문가, 경매인, 디지털 관리자까지 수많은 전문가들이 체계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미술품 하나가 상품으로서, 교육 콘텐츠로서, 역사적 기록으로서 가치를 가지게 된다.
반면, 한국의 미술관은 아직도 전시 콘텐츠만으로 승부하려 한다. 콘텐츠 자체도 뛰어난 경우가 많지만, 시스템 부재로 인해 지속적인 생명력을 얻지 못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미술관을 필수 관광코스로 인식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감을 주는 세계적 수준의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선 미술품이 공개되는 것 자체가 종종 부정적 프레임을 쓴다. 고가 작품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비자금'이나 '탈세 수단'이란 의혹이 먼저 따라붙는다. 미술품의 공공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사회 분위기 탓이다. 반면, 선진국에선 개인 소장품이 미술관에 기증될 경우 세제 혜택은 물론, 문화 자산으로서의 존경도 함께 따라온다. 카타르 왕실이 수천억 원을 들여 피카소, 고갱, 뭉크의 작품을 구입하고, 신도시 중심에 아랍 현대미술관을 세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예술을 문화외교의 자산이자, 지속 가능한 경제 콘텐츠로 바라본다. ‘하이컬처’는 단지 상류층의 취향이 아닌, 국가의 미래가 걸린 자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아트보이는 뉴욕 현장에서 하나의 해답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콘텐츠의 심화’이다. 어떤 국가든, 어떤 시장이든 결국 사람을 사로잡는 것은 콘텐츠이다. 아무리 경매가 활발하고, 아트페어가 유행하더라도, 핵심은 작가의 완성도 높은 작업이다. 세계 미술시장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는 여전히 ‘작가가 중심’이다. 그래서 아트보이는 다시 붓을 든다. 그리고 다시 기획을 한다. 단지 전시를 하기 위한 전시가 아니라, 시장이 움직일 수 있는 단단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전시를 기획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진정한 글로벌 예술의 미래를 제시하고 싶다.
미술은 분명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자본에 의해 죽는 것이 아니라, 애정 없는 시선과 시스템 없는 유통에서 시들어간다. 아트보이는 뉴욕에서 그 ‘시선의 깊이’를 배우고 돌아왔다. 이제 그것을 글로벌이라는 무대에서 실현해 보고자 한다. 뒤처졌다고 분노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앞서 가는 자의 뒷모습도 충분히 배움의 자산이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