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아트보이에게 창의적인 성장 고민과 예술을 대하는 자세를 알려 주었다. 그 해 봄이 시작될 무렵 뉴욕 브루클린으로 향하면서 예술을 바라보는 데서 나아가, 기꺼이 몸을 던져 예술을 느껴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술을 만나는 것뿐이었다.
아트보이는 거리 곳곳 벽면에 뿌려진 예술 작업들을 마주하며, 이따금 걸음을 멈추고서 아이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었다. 벽면 위에 뿌려져 놓은 예술 작품들은 아무렇게나 주저 없이 난잡한 것들로 가득 채워 놓은 것이 아니다. 저마다 예술적 역량과 작가 이름을 지닌 작품들은 몸과 마음을 떨리게 하며 아트보이의 정신적인 가치를 완충해 준다.
눈꺼풀이 한 번 깜박일 때도, 카메라 셔터가 한 번 깜박일 때도, 촘촘히 예술로 엮어지는 수천 가닥의 보이지 않는 실처럼 뉴욕 브루클린 어느 거리 벽에 둘러싸여 있는 아트보이는 도시 안에 담겨 있는 예술 영감들에 빠져 작은 사치를 부리고 있다. 뉴욕 거리 주변과 사방에 드러내고 있는 수많은 스트릿 아트 작품들은 역사와 문화를 뿜어내며 우리가 사는 뉴욕 도시에 높지 않은 예술 벽으로 자유롭게 만남을 갖게 한다.
뉴욕 도시를 가득 채운 예술 영감에 빠져 전철을 타고 브루클린역 개찰구를 맞닿드리게 되었을 때도 아트보이는 예술적 요소에 마음이 끌린다. 하물며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에 놓여 있었을 벤치와 고풍스러운 장식체 역 이름 표판에 시선이 가는 것인데도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예술을 품고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처럼 기분이 들었다. 지금 아트보이에게 필요한 건 예술 산책이며, 예술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보다 깊이 알아가는 일이다. 뉴욕 도시의 사방에는 다름 아닌 예술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특별한 도시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것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도시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낸 것일까? 저마다 충실하고 면밀한 면모를 갖춘 훌륭한 예술 작가들이 말로 묘사할 수 없는 적잖은 힘을 보탰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거리 벽면에 작품을 새기고, 누군가는 갤러리 공간 안에 작품을 새기고, 누군가는 같은 방향이 아닌 차별적 예술 울림을 전달해 줄 수 있는 특별한 곳을 찾거나 응시하며 작품을 새긴다.
오래전 뉴욕 도시를 누빈 "키스해링", "장 미셀 바스키아" 작가 등도 발길을 이곳저곳 옮기며 작품의 자취를 남겼으리라. 그리하여 탄생한 작품들은 부정하기 힘든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는다.
한순간 도시 속에 예술들이 조각상처럼 고정된다. 움직이는 건 바람에 부드럽게 나부끼는 나뭇잎뿐이다. 그렇게 한동안 예술은 도시를 지배한다. 짐작건대 수 백 년간 변함없이 그러한 예술의 지배 울림은 되풀이되었을 것이다. 가만히 고개를 뻗어 뉴욕 브루클린 뮤지엄을 탐해보니, 예술이 깊게 스며들어 있는 튼튼한 나무처럼 느꼈졌다. 옛 광장을 따라 입구까지 걷는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Ai Weiwei(아이 웨이웨이)"의 레고를 이용한 작품 "레고의 자유" 설치 예술 작품이 지극히 정성스럽게 예술 소리를 자아내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조각가 "Auguste Rodin(오귀스트 로댕)"이 청동으로 형상화한 작품 "The Burghers of Calais(칼레의 시민)"작품이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예술 생명의 싹을 틔우며 정밀하고 온화한 존재로 빛을 내고 있는 듯했다. 묵묵히 작품을 응시한다. 나날이 지나가고 계절이 바뀌고, 본래 시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아트보이가 작품을 마주하게 될 때까지 그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오랜 세월이다. 그것만이라도 지금 이 시간에 작품을 누비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에 진정으로 예술 친밀감을 품는다. 딱히 무슨 설명을 듣지 않아도 조건 없이 위대한 예술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에 그 이상의 만족 조건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아트보이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
특별한 분위기를 안고, 그대로 어딘가에 빨려 들어갈 듯한 통로를 들어서자 "KAWS(카우스)"의 "ALONG THE WAY(그 과정에서)"거대한 작품이 정면에 나타났다. 천장이 높고, 공기에서 나무 냄새 같은 것이 났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거대한 작품은 점점 더 커지게 다가왔다. 이윽고 작품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둘만의 특별한 공감 세계를 만들어 낸다.
조금 틈을 두었다가 호흡을 가다듬고서 둘만의 통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작품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순간만큼은 매우 특별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아트보이의 예술 설렘은 더욱 증폭되고, 누가 봐도 명백히 꿈을 읽는 이의 눈으로 작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그 작품이 아트보이의 마음을 동요시켰을 것이다. 오늘 또 하나의 시작과 예술이 주는 영감 일상을 통해 이러한 것을 제공받는 것도 특별한 업무 중 하나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된다. 아트보이는 천천히 예술을 마신다. 그 양분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내 눈을 치유하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특별한 작업 일상으로 인도할 것이리라. 시계가 없어도 무음 속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나는 예술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없어 라고 말하듯이.











